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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집 및 나비 이야기

조선시대 화가 남계우와 스웨덴 자연사박물관 내용 보완

by kanghoon 2019. 2. 20.

인터넷으로 나비와 관련하여 외국 자료를 찾던 중에 스웨덴의 자연사박물관에서 1935년도 우리나라의 나비표본을 우연히 볼 수 있었다.



Oeneis Urda "함경산뱀눈나비"였다,비록 표본 자체는 낡고 오래됬지만 분명히 보이는 Korea란 글자... Shinten korea 1935 , sten bergman 이란 라벨과 Oeneis Urda “함경산뱀눈나비라는 학명이 붙어있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1935년이면 우리나라에도 석주명이라는 유명한 나비 학자가 한창 나비 연구를 하던 때이며 일본인 생물학자들이 그들의 눈에는 신천지인 조선에 와서 자기 마음대로 동,식물에 명명하던 시절으로 일본과 스웨덴은 어떤 관계이기에  스웨덴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나비 및 동물을 채집또는 포획해 표본을 만들어 그들 나라에 보존했을까 ? 이 나비의 라벨에 붙어있는 스텐 베리만은 누구일까? 

Sten bergman (스텐 베리만 1895 ~ 1975))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스웨덴의 스톡홀름대에서 동물학, 식물학 등을 공부한 베리만은 캄차카반도, 쿠릴열도, 뉴기니 등 동아시아 오지를 탐사하며 '3년간의 캄차카 탐사 여행기', '극동 지역의 수천 개의 섬', '쿠릴열도의 새', '유명한 탐험여행', '멀리 떨어진 나라로부터', '비록 나의 아버지가 식인종일지라도'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

고고학자인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아돌프 6 부부는 왕세자 시절 재혼 여행으로 아시아를 여행중인 1926조선을 방문하여 총독부 주관  경주 고분 발굴에 참여해 봉황 모양으로 장식된 신라 금관이 출토되는 광경을 지켜봤다, 이 고분은 스웨덴과 봉황의 한자를 따 서봉총(瑞鳳塚)이라고 명명됐다. 이때 한국과의 각별한 인연을 잊지 못한 구스타브는 한국의 야생 동물을 채집해 스웨덴 자연사박물관에 전시하고자 베리만에게 그 임무를 맡긴 것이다.

 

      구스타브 6세  


                         서봉총 발굴 당시 모습

박제사,일본인 요리사까지 대동한 채 1935년 2월 스웨덴을 떠나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13일 만에 경성에 도착하여 황세자의 든든한 후원과 일본의 지원 아래 함경도 주을온천에 장기간(21개월) 머무르면서 전국을 누비며 야생동물을 수렵, 채집했다. 압록강 유역과 지리산 일대를 조사하기도 했고 제주도까지 건너가 야생동물을 포획했다. 희귀한 짐승을 잡으면 현지에서 박제한 뒤 곧바로 스웨덴으로 보냈고, 일부는 베리만이 한국을 떠날 때 산 채로 가져 가기도 했다. 

주을에 있으면서 함경도의 신천에서 함경산뱀눈나비”및 각종 나비를 채집한 것으로 판단

되는데 더듬이의 표본 상태로 볼 때 채집 뒤 바로 만든 표본은 아니고 상당기간이 흐른 뒤 연화 전시 및 동정을 한 것 같다, 이 나비는 요즈음 강원도 인제 지역이나 제주도 한라산에서 볼 수 있는 종이다.


 

베리만은 19384'한국의 야생동물지'(In Korean Wilds &Villages)"라는 책을발간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는 EBS에서 몄 년 전 베리만에 대해 방송을 하였다.

 

그가 남긴 사진과 글, 동물 표본 등이 우리나라의 야생동물을 해외에 널리 알리고 생활사와 동물 연구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나 마구잡이식 사냥과 희귀종 남획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와 생물자원의 손실을 가져온 점은 부인 할 수 없다(그 당시 최신식 엽총을 사용했고, 조선 사냥꾼을 대규모 동원해 거의 무차별적으로 포획했다고 한다)

자연사 박물관의 이 나비 표본은 1945년 발표된  "Bryk.F" 의 나비 관련 논문에 언급된 나비로 이 Bryk 는 우리 나비와 관련 2-3회의 논문( 분류기)을 발표한 사람으로 채집해온 표본을 보고 분류해서 정리만 한 것으로 보입니다 .

그러나 스웨덴 자연사박물관에 있는 1935년산 나비의 표본보다 100여년 더 빨리 완벽한 색과 정확한 묘사로 색이 바랜 표본과는 비교가 되지않는 나비의 기록이 있습니다.

 

一 濠 南 啓 宇 (일호 남계우 )선생께서는 1811(조선 순조11)에 출생하여

1888(조선 고종 25)에 작고하신 분으로 영의정을 지낸 남구만(南九萬)5대손이며, 부사 남진화(南進和)의 아들인 쟁쟁한 사대부 집안의 자손으로 정3품 동지중추부사의 벼슬까지 오르신 분이다,양반이 통상 그리는 문인화가 아닌 전문 화공이 그리는 채색화로 나비에 관해 세밀히 그려 조선시대를 통하여 최고의 화접도라 추앙 받는 그림을 그렸으며 나비를 잡아 책갈피에 끼워 말려 두었다가 종이를 대고 숯으로 초벌 그림을 그렸고 그릇에 두고 자세히 관찰을 했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나비를 좋아하였는데 이분이 그린 그림이 단순한 화접도가 아니고 현재 사진촬영한 것 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만 큼 나비 묘사가 정확하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이분이 그린 "군접도 4 그림에는 150종의 분류 가능한 나비가 채색화로 남아 있으며 이분이 거주하셨던 서울, 경기지방의 나비 상이 잘 묘사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촬영해서 공개하는 나비사진과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우리나라 나비의 표본 사진을 비교해서 이분의 나비 그림이 얼마나 세밀한지 비교해 보았습니다.


산제비나비 ♂


호랑나비 ♂


꼬리명주나비 ♂


이분의 뛰어난 관찰력과 세밀하게 그린 나비 그림은 사진 대신에 삽입해도 충분할 것 같다. 

특히 이분의 그림에 나오는 남방공작나비는 지금도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8월말에 남부지방

해안도서에서 우연히 그것도 능숙한 나비 채집자만 볼 수 있는 녀석을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이 그렸다는 사실, 그 당시에도 이 나비가 한반도에 있었다는 기록은 (이분의 거주 지역이었든 서울, 경기지방에서 관찰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한국명남방공작나비1947년 제주도에서 석주명선생이 한 개체를 채집하여 명명하셨습니다) 저를 무척이나 놀라게 만들었고 그리고 미 접(迷蝶) 이라고 말하는 일부 나비들도 알고 보면 수 백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관찰되던 나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속 남방공작나비                                  외국 남방공작나비                                           국내 공작나비

 

특히 이나비는 제가 "Butterflies of Thailands  2edition "에서 나비를 찾아 확인 해본 결과 Junonia Almana 로 판명되었습니다.

 

스웨덴 자연사 박물관의 80년 전 표본보다 더 세밀한 기록이 우리에게 남아 있었습니다.옛날 것은 전부 오래되고 진부하다고 치부해버리는 요즘 한국사회에서 남계우 선생의 그림은 우리

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됩니다.

 

 ○ 이글은 2006년 1월에 작성 된 것을 다시 보완했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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